e스포츠 경기를 볼 때 가장 짜릿한 순간은 엄청난 플레이가 터지는 찰나다. 프로 선수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평소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며 명장면을 만들어내곤 한다. 플레이에 대해 물으면 선수들은 흔히 "집중력이 좋았다"라고 말하지만, 일부는 자신이 ‘플로우 상태(Flow state)’에 들어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카운터스트라이크 선수 karrigan도 이러한 경험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2024년 상하이 메이저에서 FURIA와 접전을 벌이던 중, 마지막 세트에서는 사전에 준비한 전략을 과감히 버리고 본능적으로 플레이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karrigan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Mirage에서] 기본적인 전략을 모두 버리고 플로우 상태에 들어갔어요. 그게 우리가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해 필요한 방식이라고 느꼈거든요.
그렇다면 플로우 상태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리고 이 상태에서는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플로우 상태의 뇌과학
시간이 흐르는 것도, 주변 환경도 잊고 눈앞의 일에 100% 몰입해본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하다가 한 번 경험해본 것 같다. 플로우 상태란 우리가 마주한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최적의 경험을 뜻한다. 연구자가 실험에 몰두할 때, 프로그래머가 몇 시간 동안 코드를 작성할 때, 프로게이머가 경기에서 반사적으로 움직일 때 나타나는 심리적 상태다. 단순한 ‘집중’을 넘어서, 뇌가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 플로우를 만들어내는 뇌 네트워크
뇌 네트워크는 우리 뇌의 다양한 영역들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는 시스템을 말한다. 플로우 상태에서는 뇌의 세 가지 네트워크가 특별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1.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
우리가 멍하게 있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네트워크다. 하지만 플로우 상태에서는 이 네트워크가 억제되면서 자기비판적인 생각이 줄어들고, 오직 현재의 행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2. 중앙집행 네트워크(Central Executive Network, CEN)
문제를 해결하거나 복잡한 결정을 내릴 때 활성화되는 네트워크다. 플로우 상태에서는 CEN이 활발히 작동해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3. 현출성 네트워크(Salience Network, SN)
우리의 주의를 어디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플로우 상태에서 SN은 방해 요소를 걸러내고 중요한 정보에만 집중하게 해준다.
- 플로우 상태의 연료: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플로우 상태에서는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1. 도파민(Dopamine)
도파민은 동기부여와 보상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우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행동하게 만든다. 도파민 보상 체계가 활성화되면 마치 일시 무적 버프를 받은 것처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피곤함을 못 느끼게 된다. 한 번쯤 밤을 새우면서 유튜브 영상을 끊임없이 본 경험이 있을 텐데, 플로우 상태에서도 도파민의 영향으로 높은 동기부여를 유지하게 된다.
2.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노르에피네프린은 집중력과 주의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계속 몰입할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릴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이 물질이 너무 적거나 과하면 집중이 흐트러지기 쉬운데, 플로우 상태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이 최적의 균형을 유지하며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이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적정 수준이어야 플로우 상태가 지속된다. 도파민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으면 흥미를 잃고, 노르에피네프린이 과다하면 긴장감이 지나쳐 오히려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다.
플로우 상태에 돌입하려면?
플로우 상태는 우연히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에서 적절한 일을 할 때 경험할 수 있다.
[충분한 내재적 동기 부여]
플로우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는 일이 충분히 동기 부여가 되거나, 의미 있는 일이어야 한다. 내가 더 알고 싶어서 하는 연구, 목표를 위해 중요한 시험처럼 완전히 몰입할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일의 난이도와 실력의 균형]
마주한 일이 너무 쉬우면 지루함을 느껴 DMN이 다시 활성화된다. 반대로 너무 어렵다면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증가해 SN이 경고 신호를 보낸다. 적절한 난이도의 도전적인 과제가 플로우 상태를 유도하기 적합하다. 3~4번에 한 번 실패할 정도의 난이도가 적절하다고 한다.
[즉각적인 피드백]
자신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몰입이 더 잘 일어난다. 디자인 작업, 악기 연주처럼 진행 상황을 스스로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면 플로우 상태에 빠지기 쉽다.

플로우 상태는 단순한 집중을 넘어, 우리의 뇌가 최적의 성과를 내도록 작동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스포츠 선수들이 대회에서 경험하기도 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무언가에 깊이 몰입할 때도 경험할 수 있다. 플로우 상태에 돌입하여 최상의 퍼포먼스를 발휘하고 싶다면, 우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내재적 동기를 충분히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 일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는다면,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 van der Linden, D., Tops, M., & Bakker, A. B. (2021). Go with the flow: A neuroscientific view on being fully engaged. The European journal of neuroscience, 53(4), 947–963. https://doi.org/10.1111/ejn.15014
- https://youtu.be/XM3kDCYy8lc
- FaZe karrigan 인터뷰: https://www.dust2.dk/nyheder/55994/karrigan-smed-stratbogen-ud-og-kaldte-faze-til-sej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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