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회의 땅” 사우디, 스포츠 산업의 새로운 무게중심이 되다

aiden입니다 2025. 8. 10. 18:25

리야드 전경 (이미지 출처: apriltan18 - Pixabay)

 

사상 최대 규모의 e스포츠 이벤트인 EWC(Esports World Cup)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진행 중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이번 대회에서는 총 25개 종목의 경기가 펼쳐지며, 구단별 종합 성적에 따라 상금을 차등 지급하는 ‘클럽 챔피언십’ 제도도 운영된다. 대회 구성과 방식 면에서 올림픽과 같은 종합 스포츠 이벤트를 연상케 한다.

 

규모가 압도적인 만큼, 주로 게임사나 대행사가 주관하는 기존 e스포츠 대회와 달리, EWC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운영하고 있다. EWC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Public Investment Fund)가 출자한 EWC 재단(EWC Foundation)과, 사우디가 2022년에 인수한 글로벌 e스포츠 미디어 그룹 ESL FACEIT Group이 공동으로 주최한다. 지금까지 두 시즌 동안 순수 현금(상금 및 팀 보조금)만 1억 5천만 달러 이상이 투입되었다.

 

사우디의 적극적인 투자는 e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축구, 골프, 복싱에서는 신생 리그를 창설하고, FIFA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등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개최권을 잇따라 확보하며 스포츠 산업 내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주요 도시에 영화관과 문화시설을 조성하고, 대형 공연과 행사를 유치하며 문화적 발전에도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왜 사우디는 스포츠에 주목하는가

사우디가 스포츠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배경에는 ‘비전 2030’이 있다. 비전 2030’은 2016년 사우디 정부가 총리 모하메드 빈 살만의 주도 아래 발표한 국가 중장기 발전 전략이다. 이 계획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다각화를 통해 2030년까지 ‘탈석유’를 실현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한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 중 하나지만, 맥킨지의 Global Energy Perspective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석유 수요는 2030년을 기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우디는 석유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국제 사회에서 소프트 파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국가 이미지 제고, 관광 유치, 경제 다각화라는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권위 있는 스포츠 대회는 국제적 주목도를 확보한다. 올해 F1 사우디아라비아 그랑프리는 미국에서만 평균 150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으며, EWC의 리그 오브 레전드 결승전도 120만 명 이상의 글로벌 시청자를 모았다. 이러한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사우디를 방문할 가치가 있는 나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사우디가 권위 있는 기관·기업과 협력하여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모습은 사우디가 ‘사업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자본의 힘: 사우디 스포츠 시장의 변화

사우디 정부는 비전 2030의 발표와 함께,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담당할 정부 기관인 GEA(General Entertainment Authority)를 신설했다. GEA의 지휘 아래 2028년까지 국부펀드 자금 640억 달러를 엔터 산업에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2016년부터 이어진 대대적인 투자는 여러 방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사우디의 스포츠 산업 시장은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2016년 13억 달러에서 2024년 85억 달러로 8년 만에 약 6.5배 늘었고, 2030년까지 21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평균을 훨씬 웃도는 성장률로, 사우디가 세계 스포츠 산업에서의 위상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스포츠 참여율 역시 뚜렷하게 향상되었다. 2015년에는 사우디 국민의 13%만이 정기적으로 체육 활동에 참여했으나, 2024년에는 약 50%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국내 다종목 스포츠 클럽 수도 9개에서 126개로 급증했다. 아마추어와 프로 스포츠 모두 사우디 국민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도표] 사우디아라비아와 전세계 시장 규모 성장 추이

 

더불어, 사우디 내에서 스포츠 및 e스포츠 대회가 활발히 개최되면서, 인적 자원 유입과 인프라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e스포츠 인력 양성기관 젠지글로벌아카데미의 구안 왕(Guan Wang) 대표에 의하면, 유럽의 e스포츠 대회 기획·운영 및 중계 제작 전문 인력이 사우디로 이동하는 추세다. 실제로 현재 EWC를 운영하는 스태프 역시 국제대회 주최 경력이 풍부한 유럽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우디 왕국을 둘러싼 스포츠워싱 논란

그러나 자본의 유입이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권위주의 정부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공존하는 체제를 표방하는 왕국으로, 인권과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사우디가 스포츠를 활용해 자국의 윤리적인 문제를 은폐하려 한다는 ‘스포츠워싱’ 우려가 제기되었다.

 

과거 라이엇 게임즈는 사우디의 NEOM 프로젝트와 파트너십을 맺으려 했지만 커뮤니티의 강력한 반발로 철회한 바 있으며, 지난해에는 EWC 참가 자체를 거부한 일부 선수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사우디와 협업하는 기업이 늘면서 보이콧 사례가 줄었지만, 윤리적인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스포츠 생태계는 어디로 향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스포츠 산업 투자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2027년 올림픽 e스포츠 게임, 2029년 동계 아시안 게임, 2034년 아시안 게임, 2034년 FIFA 월드컵까지 총 네 개의 메가 스포츠 이벤트 개최가 확정되었다. 투자 확대의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금과 자본을 따라 스포츠 생태계가 움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스포츠와 e스포츠 구단에게는 사우디가 ‘기회의 땅’일 수도 있다. 젠지 이스포츠 단장 이지훈은 한 컨퍼런스에서, “EWC에서 오버워치에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며, “향후 e스포츠가 종목사 중심에서 사우디(EWC) 중심으로 무게가 이동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은 스포츠 산업의 규모와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자본에 기대는 산업 구조 속에서, 스포츠 생태계의 이해관계자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 예비산업인재 과정의 최종과제로 제출한 기획기사입니다.